부여 백제 관북리유적에서 칠피갑옷 출토

폐기된 다량의 유물과 불 탄 목탄 함께 출토돼 백제 멸망 당시 혼란 상황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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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백제 관북리유적에서 칠피갑옷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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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다량의 유물과 불 탄 목탄 함께 출토돼 백제 멸망 당시 혼란 상황 추정

부여 백제 관북리유적에서 칠피갑옷 출토


- 폐기된 다량의 유물과 불 탄 목탄 함께 출토돼 백제 멸망 당시 혼란 상황 추정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임승경)는 부여 관북리유적 백제 사비기 왕궁시설로 추정되는 건물지의 유물 폐기층과 수혈유구(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에서 칠피갑옷(옻칠된 가죽을 연결하여 만든 갑옷)을 발굴했다.


1982년부터 발굴조사가 시작된 부여 관북리유적은 대형 전각건물지와 연못지 등 왕궁과 관련한 중요 유구가 확인된 바 있으며, 지난 21일부터 16차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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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부여 관북리 유적 내 칠피갑옷 출토위치 < 사진 = 문화재청 >


2023년 조사에서는 백제 사비기의 건물지 세 개의 동이 남북방향으로 길게 확인되었는데, 궁과 사찰에서 주로 사용하는 중심건물 주변을 둘러싸도록 기다랗게 만든 이른바 장랑식(長廊式) 건물로, 위치와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왕궁 내 조당(고대 동아시아 국가에서 율령통치의 중요한 요소인 정무·의례·향연 등 국가적 행사가 개최되는 공간으로 조정(朝庭)과 유사함.) 공간의 일부로 추정된다.


또한, 이 장랑식 1호 건물지의 유물폐기층과 30미터 범위 내 6개의 수혈유구에서 칠피갑옷이 출토되었다. 처음에는 매우 얇은 조각 일부만 노출되어 갑옷으로 단정할 수 없었으나, 발굴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유물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면서 겹겹이 쌓인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 사각형의 미늘과 각각의 미늘(일정한 크기의 조각으로 구성된 갑옷의 개별단위)을 연결했던 원형의 구멍을 확인하였다. 이후 출토 조각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옻을 칠한 갑옷임을 알 수 있었다.


출토된 총 6점의 칠피갑옷 중 2호 수혈유구에서 확인된 갑옷이 비교적 잔존상태가 양호하다. 전체 크기는 잔존 폭이 18.2cm, 잔존 너비 49.2cm이고, 개별 미늘의 길이는 7.5~7.8cm, 너비 4.2~4.4cm이며, 미늘을 연결하기 위한 원형의 구멍은 0.2~0.3cm이다.


2호 수혈유구 주변의 기와폐기층에서는 말 안장 부속품 중 발 받침대인 등자가 출토되었고, 3호 수혈유구에서는 말의 아래턱 뼈로 추정되는 동물유체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주변 출토유물 상황과 갑옷의 형태를 고려할 때 2호 수혈유구에서 출토된 갑옷은 말갑옷(馬甲)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백제시대 문화층에서 칠피갑옷이 출토된 사례는 공주 공산성(2011년) 이래로 부여 관북리유적이 두 번째이다. 또한, 관북리유적과 공주 공산성 칠피갑옷 모두 발견 당시 주변에 폐기된 다량의 유물과 불에 탄 목탄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백제 멸망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사회 상황의 일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진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발굴현장에서 수습한 칠피갑옷에 대한 면밀한 과학적 보존처리와 함께, 현재 진행 중인 부여 관북리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왕궁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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